치매는 모든 세대를 위한 지역사회의 과제
치매는 더 이상 노년층만의 질환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조기 발병 치매 사례가 늘어나면서, 40대 혹은 30대에 치매를 진단받는 사람들도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해 전 연령층을 위한 치매 돌봄 전략을 재정립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Ageing in Place’, 즉 지역사회에서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돌봄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뉴질랜드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환자를 격리시키는 대신, 가능한 한 자신이 살던 공간과 지역 사회 안에서 치매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단순한 복지 이상의 존엄, 연결, 참여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
Ageing in Place의 개념과 전 연령 적용
Ageing in Place란 한 개인이 병이나 장애가 있더라도, 자신이 익숙한 지역과 집에서 가능한 오래 살아가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단순히 ‘나이 들어서 집에 머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이 개념을 청년 치매 환자, 가족을 이루지 않은 성인, 이민자 가정 등 다양한 인구 군에 확장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40대 후반에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받은 한 남성은 자택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역 데이센터의 인지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 동료들이 환자와의 소통 방법을 배운 덕분에 그는 퇴직 후에도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일부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치매의 연령이 낮아질수록 사회와의 연결 유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맞춤형 돌봄 서비스 – 집으로 찾아가는 지원
뉴질랜드의 지역사회 기반 돌봄은 서비스가 환자에게 찾아가는 방식이다. 치매 진단 이후 지역 보건 담당자들이 Needs Assessment(필요도 평가)를 진행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서비스가 제공된다.
- 가정 방문 간병인 배정
- 약 복용 시간 알림 및 관리
- 식사 배달 서비스
- 재활운동 또는 인지훈련 전문가의 방문 치료
- 주간 보호센터(Day Service) 이용
특히 청년층 치매 환자의 경우, 가족 돌봄이 아닌 전문 돌봄이 요구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공공 자원의 조율과 유연한 서비스 설계가 핵심이 된다.
Day Service: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공간
뉴질랜드 전역에는 치매 환자를 위한 주간 보호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치매 환자가 지역사회와 연결된 삶을 계속 이어가도록 돕는 중간 지점이다.
여기서 이뤄지는 활동은 다음과 같다:
- 기억 회상 대화와 그룹 활동
- 미술, 음악, 원예치료
- 신체활동을 위한 가벼운 운동
- 정서 교감을 위한 소셜 타임
오클랜드의 한 센터에서는 매주 ‘기억으로 떠나는 산책’이라는 활동이 열린다. 참여자들은 예전 사진을 함께 보며 자연 속을 걷고, 당시의 감정을 이야기 나눈다. 이는 단순한 회상 이상으로, 감정 기억을 유지하고 타인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도구가 된다. 이용자는 청년에서 노년까지 다양하며, 프로그램 역시 연령과 관심사를 반영해 개별화된다.
치매 친화적 커뮤니티: 함께 살아가는 사회 만들기
지역사회 돌봄의 성공은 결국 사회 전체가 치매를 이해하고 함께하는가에 달려 있다. 뉴질랜드는 국가 차원에서 ‘치매 친화적 커뮤니티’ 조성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운동은 모든 세대의 치매 환자가 일상 속에서 존중받고, 배제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구체적인 실천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공공기관과 상점의 직원 대상 치매 응대 교육
- 도서관, 카페, 교회 등에 치매 안내 리플릿 비치
- 지역 행사에 치매 환자와 가족 초대 및 별도 휴식 공간 마련
- 공공교통에서 치매 인식표 소지자의 탑승 지원
청년 치매 환자 역시 이 같은 커뮤니티의 배려 안에서 사회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취미활동을 이어가며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이민자나 언어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다국어 안내 체계와 문화 맞춤 돌봄 서비스는 뉴질랜드만의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요양시설은 최후의 수단
뉴질랜드는 요양시설을 ‘필요할 때만 선택해야 할 마지막 옵션’으로 본다. 보건부는 재가 돌봄을 우선 제공하라는 지침을 전국 보건기관에 전달하고 있으며, 지역에서는 이를 위한 다음과 같은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 24시간 응급 간병 지원
- 단기 보호센터 운영
- 가족 간병인을 위한 휴식 보장
- 장기 입소 전에 상담과 권리 안내 시행
이 구조는 특히 젊은 치매 환자처럼 장기적 생활 설계가 필요한 경우, 요양시설 입소 대신 자립 가능한 돌봄 환경을 구축하는 데 유리하다.
치매를 진단받아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치매 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단절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해오던 일, 관계, 취미, 사회적 역할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지역사회 중심 돌봄 모델은 치매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치매 이후에도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여정으로 인식한다.
이 나라의 돌봄 체계는 환자의 인지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기반으로 돌봄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음악을 사랑했던 치매 환자에겐 음악 치료 중심의 데이 서비스가 연결되고, 글쓰기를 즐기던 사람에겐 회상 일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청년이나 중장년층 환자에게도 이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직장 내 치매 친화 가이드라인을 통해 업무 조정, 동료 교육, 탄력 근무가 이루어지며, 사회와의 단절을 늦출 수 있다. 이처럼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서 환자를 존중하는 문화는 복지 시스템을 넘어 사회의 철학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이 모델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자기다움’을 끝까지 지켜내는 삶이다. 치매가 있어도 웃을 수 있고,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고, 하루를 계획할 수 있다는 가능성. 뉴질랜드는 제도와 사람, 커뮤니티 모두가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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